발렌시아에는 스페인 왕비 소피아의 이름이 붙은 일련의 문화공간이 있다. 풍부한 미술품을 소장한 뮤지엄이 유명한데 여기에 명물이 추가되었으니 바로 ‘팔라우 데 레자르’라는 오페라극장이다. 인공호수에 건립된 초현대식의 아름다운 이 극장은 2006년에 첫 시즌을 맞이했는데 본 영상에 실린 <피델리오>는 소피아 왕비가 임석한 가운데 그해 10월에 공연된 오프닝 실황이다.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요, 당대에 유행한 구출극을 진지하게 다룬 <피델리오>는 남편을 구하고자 피델리오라는 가명으로 남장한 레오노라가 감옥 간수로 들어온 이야기다. 이 역을 독일을 대표하는 메조소프라노 발트라우트 마이어가 노래한다. 바그너 가수로 소프라노 역할까지 소화하는 마이어이기에 바그너 오페라의 선구작을 노래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을 느낄 수 없다. 남편 플로레스탄 역은 이런 레퍼토리에 가장 정통한 페터 자이페르트가 열창한다. 아름다운 극장과 더불어 피에르 알리의 연출에도 주목하시라. 그는 <피델리오>의 묵직한 분위기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사실성과 상징성이 이상적인 조화를 이룬 무대를 구현했다. 지휘자 주빈 메타는 피델리오 서곡은 물론 피날레 직전에는 가장 유명한 레오노레 서곡 제3번을 삽입했다.